읽기일기

시간의 향기 (20131207)

시간의 향기,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pp. 32

두 배로 빨리 산다면 세상에서 두 배로 많은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고, 한 번의 인생 속에서 두 번의 삶을 누리는 셈이 될 것이다. (중략) 두 배로 빨리 사는 사람은 두 배로 많은 삶의 가능성을 만끽할 것이다. 삶의 가속화를 통해 삶은 그만큼 배가되고, 이로써 충만한 삶의 목표에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나이브하며, 충만함과 단순히 꽉 찬 것 사이의 혼동이 빚어낸 결론일 따름이다. 충만한 삶은 그저 양적 논리로 정의되지 않는다. 온갖 삶의 가능성들을 실현한다고 자연히 충만한 삶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건들을 단순히 헤아리고 열거한다고 저절로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pp. 33

문제는 오늘날 삶이 의미 있게 완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삶이 분주하고 초조해진 원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이 시작하고 "삶의 가능성들" 사이에서 불안하게 우왕좌왕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단 하나의 가능성을 완성하고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삶을 충만하게 해줄 어떤 이야기도, 의미를 만들어주는 전체도 없다.

pp. 39

계몽주의 시간관념은 피투성과 소여성에서 벗어난다. 시간은 탈소여화되고 탈자연화된다. 이제 시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시간의 끝으로 내던져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물의 자연적인 순환속에 갇히지도 않는다. 자유의 이념이, "인간 이성의 진보"라는 이념이 역사에 영혼을 불어 넣는다. 시간의 주체는 더 이상 심판하는 신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투신하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pp. 41

신에게서 인간으로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뜻하지 않는 결고과 나타났다. 시간의 안정성이 무너진 것이다. 지배적 질서에 최종적 타당성과 영원한 진리의 봉인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신이기 대문이다. 신은 영속하는 현재의 상징이다. 권력 교체와 더불어 시간은 신이라는 받침대,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하는 받침대를 상실하고 만다.

<피로 사회>의 한병철씨의 전작이다. 현대의 일에 쫓기듯 사는 삶의 모습을 무한한 시간의 가속화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시대가 지나며 그 때의 철학으로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다 보고 난다면 삶을 바라보는 중대한 시각을 가지게 될 것만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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