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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 2015년 5월 (20150601)


사진예술 2015.5, 사진예술 편집부 엮음/월간사진예술(월간지)

"유일한 배려는 스트로보를 켜지 않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작가는 제도가 만들어낸다. 이렇게 말하면 반감을 가지는 분들이 많다. 예술이란 뭔가 유연하고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것인데 삭막한 제도 따위가 어떻게 작가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어떤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리움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연 후, 그의 위상이 바뀌는 것을 생각해 보라. 제도는 예술의 바깥에 있는 틀이 아니라 예술을 키워내는 밭이고 먹여 살려주는 식당이고 예술의 싸움이 벌어지는 링이다. (중략) 작가를 만드는 것은 도구가 아니다. 도구를 다루는 창의성이 작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창의성을 수용해줄 제도가 작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제도에 잡아먹히지 않고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별도의 세계를 구축하는 특이한 태도가 작가를 만들어낸다. (중략)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오늘날, 열심히 작업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면 금세 남들의 이미지에 휩쓸려 들어가 버린다. 작가는 그 격량 속에서 자기 세계를 지켜내는 사람이다 설사 그게 작은 오무막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작가가 희귀할 수밖에 없다.

'Purisms'은 픽토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을 다룬 섹션이다. 에드워드 웨스턴의 작업에서 그 변화가 뚜렷이 드러나듯, 당시 연초점 기법과 파인 프린트로 회화적인 사진을 추구하던 사진가들을 산업화되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상물의 순수한 형태적 효과를 담아내는 데에 점차 집중하게 된다.

1920년대 중반 유럽의 미술에서 두드러지던 리얼리즘과의 결별, 그리고 익숙한 것에 숨겨진 낯선 요소들을 강조하거나 꿈과 현실을 조화시키고자 했던 시도가 사진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보여주었다.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사진가들은 클로즈업, 스케일의 조작, 신체 풍경화 등의 테크닉을 작업에 적용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는 "카메라는 카메라다워야 한다"는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유행처럼 번져나가 잃어버린 '손의 개입'을 다시 갈망하도록 만든다. 즉, 하이테크화가 가속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 원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카메라다운 것이 무엇인가? 조금 동의하기 힘들다. 마이크로어레이렌즈를 사용한, 촬영 후에 초점을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카메라는 카메라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서 이곳의 여러 담장에 그려져 잇는 벽화의 외형적인 느낌이나 간혹 열리는 행사에 시각적인 호기심이 들어 사진을 찍게 되면 작품의 내용은 부재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작품이 되려면 조형성이나 컬러만을 표현하는 것에서 탈피해 이곳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이 공간의 사회 문화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태도입니다. (중략) 다시 말해, 시각적인 자극을 따라 사진을 찍거나 조형성을 표현하는 것에 치중하지 말고 이 시대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문화 현상 중 하나인 재래시장의 변화에 주목해 사진을 찍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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