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일기

사진, 예술로 가는 길 (20150723)

3년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 소재 주의에 빠지지 말자.

사진이 말인 줄 알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듯 어떤 사진을 찍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까 연구하게 되고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 없이 좋은 사진, 창조적인 사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새로운 사진, 처음 보는 사진.
둘째, 보아서 보람이 있는 사진, 감동을 주는 사진.
셋째, 여러 사람이 늘 찍던 소재라도, 그 소재에서 남다른 의미를 새로이 찾아낸 사진,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사진.

결국 작품 사진, 창조적인 사진이란 새로운 어떤 것이라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예술은 창작에 대한 이름이요, 창작이란 ‘처음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이 아니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술에서의 모방은 남의 흉내로 부끄러운 일이고, 표절은 도둑질이라 법적 처벌까지도 받는다.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었다면 그것을 찍어야 한다. 남이 미처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이나 의미를 찾아내어 그를 영상화하였다면 그것은 오히려 칭찬을 받는다. 이미 들어알고 있었다 해도, 알고 있던 그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해석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 일깨워 준다면 그런 말이야말로 우리가 듣고자 원하는 말, 들을 만한 말이 된다. 그로 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 새롭게 보여야 새롭게 찍힌다. 흔한 얘기이지만, 사진은 보이는 대로 찍힌다. 보이지 않으면 찍히지 않는 것이 사진이다. 때문에 작가의 눈에 새롭게 보여야 하고, 새롭게 보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남과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할 줄 아는 눈이 필요한 것이 이 때문이다. 늘 보던 소재, 흔하디흔한 소재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느낌을 얻기 위해서는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관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사진은 결코 발로 찍는 예술이 아니다. 사진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재 찾기로 사진이 끝나는 것이라면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사진은 소재로 우열이 결정되는 작업이 결코 아닌 것이다. (…) 신기한 소재 찾기가 창작일 수 없다.

앞에서 찍지 말라고 한 것은 밤낮 찍던 식으로는 찍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 다 아는 얘기 무엇 때문에 또 하려는가 하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찍으라는 것은 그 흔한 소재, 남들 다 다룬 소재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찍으라는 뜻이다. 그게 사진이요, 그럴 때 사진은 볼 만한 사진으로 살아난다는 그런 뜻이 된다.

그러한 사진, 아슬아슬한 순간이 ‘결정적 순간’은 결코 아니다. ‘결정적 순간’이란 그러한 물리적 순간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사물과 사진가가 만나는 심리적 순간을 뜻한다. 아슬아슬한 순간만이라면 순발력이 사진과 최고의 미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순발력보다 중요한 것이 잇다. 현실을 볼 줄 알고 사물을 파악할 줄 아는 눈이다. 거기에 그 사물을 감싸안는 작가의 인간미가 있다. 사물의 의미를 찾아내어 자기 체취로 소화해내는 능력인 것이다.

필자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무엇을 찍을까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찍고 싶은가 그것부터 찾아 찍으라”고. 무엇을 찍을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헤매지 말라는 뜻이다. 이럴 때 필름만 버리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직어 보기 때문이다.
무엇을 찍을까 이전에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어떤 사물이 새로운 의미로 눈에 띌 때까지 마음을 열어 놓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막연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고민해야 한다. 늘 생각하면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문득 어느 날 그 사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새로이 보일 때가 있다.

그렇다면 소위 프로 작가들의 사진 인식은 어떤 것이며, 올바른 사진 인식이란 어떤 것이라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기술이 아닌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프로다 아니다를 떠나, 사진가로서의 입지가 확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하면 곧장 어떤 사물을 찍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 어떤 사물을 찍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앞서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내용의 사진을 찍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내용이 결정되어야 그 내용을 형태화하기 위해 어떤 사물을 찍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곧, 주제가 결정되어야 그 주제에 알맞은 소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얘기인 것이다.

한 장짜리 사진이라도 발표할 때마다 공통된 감정이나 사상이 드러나면 된다. 그게 바로 주제이니까. 카르티에-브레송은 언제나 한 장짜리 사진으로 발표를 했지만, 그의 사진에는 일관된 그의 인생관, 그의 사진철학이 들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는 것이지, 발표할 때마다 오락가락했다면 그를 전문적인 사진가로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여기서 다루지도 않을 것이다.

눈에 띄는 소재를 찍으라는 것은 내 관심을 끄는 것, 공연히 찍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찍되,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것을 찾으라는 뜻이다. 한두 번 찍고 나면 관심이 사라질 그런 소재가 아니라, 두고두고 찍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를 찾아보라는 뜻이다. (…) 대상이 시시로 바뀐다는 것은 사진의 내용이 일정한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사진은 한 장으로 끝날 수밖에 없고, 그런 한 장짜리 사진만으로는 작가의 일정한 생각이나 느낌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사진은 단순 취미, 도락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창조적인 사진으로 이를 수가 없다. 지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소재를 권하는 것이 그래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이것이 무엇이다 하고 설명하는 식의 사진에 머물러 있다는 데에 있다. (…) 설명은 예술적 창조 행위가 아니다. 창조란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설명은 이미 만들어진 것, 이미 있었던 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으로 창조 행위에서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사진이나 그림, 무용 따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예술은 설명을 구체적으로 할 수도 없다. 언어야만 구체적 설명이 가능하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예술이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외형적인 데 그칠 수밖에 없다. 내면적인 생각이나 느낌은 설명할 도리가 없다. 설명은 피하라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사진은, 예술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지, 외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거나 알려 주는 작업이 아니다. (…) 아름다운 풍경인데 왜 작품이 아닐까? 답은 간단하다. 단순히 외형적 풍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풍경이요 하는 식의 설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필자가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권고가 있다. ‘한 발 더 들어가라’는 것이다.
사진을 전공할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그저 한 발 더 들어가 찍으라고만 권하지만, 사진학과 학생들을 비롯해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발 더 들어가 찍은 뒤, 다시 한 발 더 들어가고, 다시 한 발 더 들어가 이제 더 들어갈 데가 없다고 생각될 때까지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셔터를 누를 것을 권한다. 이것이 바로 대상을 좁혀 보는 방법으로, 이렇게 좁힘으로써 작가가 보고 느낀 것을 보다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가 있게 된다.

풍경사진의 경우, 찍어 놓고 보면 본 대로 찍힌 것이 사실이다. 넓고 시원하게 숲이 있고, 물이 흐르고, 구름이 몇 장 더 떠 있어 본 대로의 모습이 다 찍혀 잇으니까. 따라서 왜 본대로 찍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단순히 본 것을 본 대로 찍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가 아름다운지, 어떻게 아름다운지를 찾아 그것을 따내야 한다.

확실히 보고 찍으라는 것은 내 눈에 띈 대상이 왜 내 눈을 끌었는지를 알고 찍으라는 뜻이다. 어떤 사물이 아름다우면 왜 아름다운지, 어떻게 아름다운지, 내 눈으로 확인한 뒤에 찍어야 그 사진에 그 사물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확실히 보지 못하고 찍으면 그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확실히 보았을 때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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