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하루에도 수만개의 글자를 읽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장의 종이를 들춰 읽습니다.
이것은 그 읽기에 대한 일기입니다.

안티프래질 (20170607)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와이즈베리

복잡계는 탐지하지 어려운 상호 의존성과 비선형 반응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비선형은 당신이 약 복용량을 두 배로 늘리거나 공장 종업원 수를 두 배로 늘리면 처음 얻었던 효과의 두 배를 얻지 못하고 훨씬 더 많거나 혹은 훨씬 더 적은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프래질을 탐지해 인식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잇으며 최소한 프래질의 규모를 비교할 수도 있다. 반면 리스크를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은 지금으로선 신뢰하기 어렵다. 먼 미래에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충격이 다른 사건이나 충격에 비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주장은 신뢰를 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떤 대상이나 구조가 다른 것보다 더 프래질하다는 주장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

나는 자꾸 예측해야 하고 겁을 먹게 만드는 리스크를 논의하는 대신 프래질의 개녕믈 강조하고자 한다. 프래질은 리스크와 달리 예측하려하거나 겁을 먹게 만들지 않으면서 안티프래질과 반대 의미를 지닌 흥미로운 단어다.

단순한 것은 더 많은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두려움 없이 다루도록 하며, 훨씬 더 바람직하게는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의 무지를 똑바로 바라보게 해줄 몇 안되는 방법, 원칙, 금지 명령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안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함을 이루어내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앗다. 아랍인들도 이런 생각을 다음과 같이 통렬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실력이 없어도 된다. 그것을 글로 쓰려면 정복해야 한다.

스트레스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으며, 명백하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인 ‘영역 의존성(domain dependence)’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영역이란 행위의 영역을 의미한다. (…) 인간은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면 다른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도처에 너무나 명백하게 존재하는 안티프래질을 인식하지 못한다. 성공, 경제성장, 혁신이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과잉보상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사고방식은 인식하면서 말이다. 또한 우리는 다른 곳에서 작용하는 이런 과잉보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개념 전달의 어려운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지적 장애요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을 때 지혜와 합리성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내는가? 먼저 절망적이지는 않더라도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보라. 나는 필요가 혁신과 발전을 낳는다고 믿는다. 이런 혁신과 발전은 초기 발명 혹은 발명을 위한 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서 발생되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영역 의존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과잉보상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노화에서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부적응과 노쇠의 조화인데,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 있다. 노쇠는 피할 수 없으며 피해지지도 않지만, 부적응은 피할 수 있다. 노화의 상당 부분은 편안함이 주는 효과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 이런 인위적인 노화는 우리 몸이 갖고 있는 판티프래질적 특성을 억압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생물, 무생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구분을 해야 한다. 더 효과적인 구분은 복잡계와 단순계로 나누는 것이다. (…) 복잡한 세상에서는 ‘원인’이라는 단어의 개념 자체가 수수께끼다. 포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실제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호 작용하는 요소들은 지닌 복잡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스트레스를 통해서 각 요소들 간에 정보를 전달하는 사실이다. (…) 또한 실수와 그에 상응하는 결과는 정보가 된다. (…) 실제로 정보를 빼고는 복잡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기계적 형태, 단순계 유기적 형태, 복잡계
지속적인 유지와 보수가 필요 자기 치유
무작위성을 싫어한다 무작위성(작은 변화)를 사랑한다
회복시킬 필요가 없다 스트레스를 조절해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상호의존성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다 상호의존성이 높다
스트레스가 재료 피로를 일으킨다 스트레스의 부재가 시스템을 위축시킨다
사용하면 늙는다(소모된다) 사용하지 않으면 늙는다
충격으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충격으로부터 과잉보상이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 노화된다 시간이 지나면 숙성과 노화가 동시에 생긴다

이런 혼란을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라는 현대적인 질병 때문에 점점 사라지고 있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인간을 매뉴얼에 따라 간단한 기계적 반응을 보이는 세탁기처럼 취급하는 현대 생활의 한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가 만들어낸 용어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사물로부터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체계적으로 제거해 아주 작은 부분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모든 것들이 편안함, 편리함 효율성을 위해서 진행된다. (…) 투어리스트피케이션은 여행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배우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누군가의 안티프래질은 반드시 타인의 프래질에 대한 대가로 나타난다. 시스템에서 어떤 단위의 희생은 반드시 다른 단위의 혜택을 위해서 필요하다. 지금 막 시작하는 기업의 프래질은 경제 전체의 안티프래질을 위해 필요하다.

시스템 내부의 일부 구성 요소는 시스템 전체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들기 위해 프래질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유기체 자체는 프래질하지만, 유전자 내의 암호화된 정보는 안티프래질하다.

진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오직 진화의 안티프래질적 특성 때문에 진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진화는 스트레스, 무작위성, 불확실성, 무질서를 좋아한다. 개별 유기체는 상대적으로 프래질하지만, 전체 유전자는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충격을 이용한다. 따라서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는 자연과 개별 유기체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프래질하면, 정밀하게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최대한 이탈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탈은 도움이 되기보다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프래질은 예측 가능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역으로 말해, 예측 가능한 시스템은 프래질을 초래한다. 만약 이탈을 원한다면, 당신은 미래에 발생 가능한 결과의 분포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결과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은 안티프래질한 사람이다.

착오를 정보로 인식해 합리적으로 처리한다면 시행착오 속의 무작위적인 요소가 그렇게 무작위적이지는 않다. 모든 시행이 효과가 없는 정보만 제공한다면, 오히려 해법에만 집중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시도는 가치가 있고 실패보다는 비용에 가깝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전체가 아닌 부분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다. (…) 이는 좋은 시스템과 나쁜 시스템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항공 산업과 같은 좋은 시스템은 실패가 미래의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부의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작은 실패들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 모든 비행기 사고가 다음 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반면, 모든 금융위기는 다음 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

나는 실패를 한 후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그 이유를 찾기보다, 자기 반성을 하지 않고 실패를 활용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당혹스럽고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는 사람을 패배자로 규정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나쁜 상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안티프래질해지고 진화하려면 모든 개별 기업은 필연적으로 프래질해야 한다. 진화에서는 발전을 이룩하고 적절하지 않은 개체의 재생산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에서 진 유기체는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강한 자의 안티프래질은 약한 자의 프래질과 희생을 요구한다.

정부는 이런 모델을 붕괴시키면서 대기업에게 주게금융이라는 혜택을 제공한다. 다른 기업에 미치는 전염성을 막기 위해 대기업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구제금융은 리스크 수용의 건전성에 역행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구제금융이 어느 누구도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몰락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지속적인 실패만이 시스템을 보존해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대부분의 정부 개입과 사회 정책은 약한 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존 세력을 강화시켜준다.

지금까지 집단의 이해와 개인의 이해 간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살펴보았다. 경제는 개인을 소멸시키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다. 개인을 보호하면 해로운 결과가 나타나며, 개인의 이이글 위해 진화를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을 굶주림으로부터 지켜주고 개인에게 사회적 보호를 제공해줄 수 있다.

사람들은 작은 지역 단위에서는 수치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단위가 커지면, 다른 사람들은 추상적인 항목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람들과 사회적, 정서적 소통이 별로 없는 공직자들의 뇌 구조는 감정보다 숫자, 도표, 통계 이론에만 매몰되기 쉽다.

작은 것이 여러 모로 아름답다. 작은 것이 큰 것보다 더욱 안티프래질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실제로 큰 것은 부서지게 되어 있다는 말은 슬프게도 대기업, 정치가 큰 포유동물이나 행정기관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인간이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보이는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가변성을 지닌 시스템을 예측 불가능하고 주로 점프를 하면서 움직이는, ‘두꺼운 꼬리’ 시스템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극단의 왕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두꺼운 꼬리’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사건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아주 낮다. (…) 실제로 계획이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믿음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정책을 입안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나도 무작위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주변 여건과 적응 간의 적절한 상호 작용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는 ‘우리 공화국은 살인,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더 강해지고, 시민들은 미덕을 쌓아가고 있다. (…) 약간의 동요는 정신에 자양분을 공급해주며, 종이 번성하도록 만드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자유다.’ 라고 말했다.”

극단의 왕국에서의 리스크를 생각할 때는 증거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증거는 너무 늦게 나온다), 잠재적인 피해를 생각해야 한다. 세상은 더 큰 피해가 발생할 만한 단서를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데이터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리크스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설득하기가 어렵다.

나는 근대라는 말을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고 울퉁불퉁한 것을 부드럽게 하여 가변성과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근대는 무작위성이 내재된 생태계로부터 인간을 신체적, 사회적, 심지어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추출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 오히려 합리화로 특징 지어지는 시대 정신을 의미한다. 즉 인가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설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한다.

이처럼 치료를 받고 나서 숨어 있거나 나중에 나타나는, 이익을 훌쩍 넘는 순손실을 의원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 결국 다른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분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리스크를 분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확률적 이익에서 확률적 손실을 빼야 한다.

영역 개입의 사례 의원성 질환 / 대가
의학, 보건 * 과잉 진료
* 규칙적인 식사 공급, 온도 유지, 신체의 무작위성을 거부
* 약의 복용을 중단하지 않고 늘림
* 프래질
* 의료 과실
* 허약해짐(그러나 장수한다), 제약회사의 번영, 항생제에 대한 내성
생태학 * 철저한 산불 예방 * 전체적인 위험을 약화시키고, 더 큰 산불을 일으킴
정치 * 중앙 계획
* 안정을 위해 미국이 부패한 정권을 지원
* 정보의 불투명성
* 형명 이후의 혼란
경제 * 호황과 침체는 이제 없다, 대안경기
* 국가 개입주의
* 최적화
* 발생 빈도가 낮은 사건에 가격을 부과할 수 있다는 환상, 밸류 엣 리스크 기법의 개발, 규모의 경제에 대한 환상, 2차 효과에 대한 경시
* 프래질
* 경제위기의 심화
* 기존의 정부 친화적 기업 지원, 중소기업 약화
* 경제의 취약 거짓된 효율성
* 대규모 파산
기업 * 긍정적 자문, 위험이 없는 수익에만 집중 * 부자가 된 사기꾼, 기업의 파산
도시화 * 도시계획 * 도시의 황폐화, 도심의 술럼화, 우울증, 범죄
예측 * 끔찍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블랙 스완 영역 전망 * 숨은 위험
문학 * 편집자가 텍스트를 수정 * 지루한 내용, <뉴욕타임스> 스타일의 상업적인 글
양육 * 사커 맘, 아이들의 일상에서 모든 무작위적 요소를 제거 * 아이들 마인드의 투어리스티피케이션
교육 * 개입주의에 기반을 두는 교육 방침 * 루딕 오류,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음
기술 * 네오매니어 * 프래질, 소외, 멍청하고 따분한 사람
미디어 * 무익한 정보 * 잡음/신호 – 필터링 메커니즘의 파괴
* 개입주의

이론은 매우 프래질하다. 무수한 이론들이 나타났다 사라져버리길 반복한다. 그러나 현상학은 계속 남아 있다. 사람들이 현상학은 강건하고 유용하지만 이론은 물리학을 제외하고는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경제 현상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2007~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붕괴를 예측했으면 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언하건대 서브프라임 붕괴는 금융위기의 증상이지, 바탕에 깔려 있는 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를 예측한다고 해서 금융위기를 막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의 소용돌이를 설명하면서 촉매를 원인으로 잘못 생각하는 우를 범한다. (…) 논리는 위로가 될지 몰라도 초점은 엉뚱한 곳을 향했다.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프래질한 측면이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침투 이론’에서는 지형의 무작위성이 갖는 특징이 연구대상이지, 지형의 한 가지 요소가 갖는 특징이 연구대상은 아니다.

정치와 경제 현상에서 꼬리에 해당되는 사건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확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측을 위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해도, 혁명을 예측하는 것은 카드의 수를 세는 것과는 다르다. 인간은 결코 정치와 경제 현상을 블랙 잭처럼 다루기 쉬운 무작위성을 지닌 현상으로 바꿀 수 없다.

중대하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경제와 정치 현상을 제대로 예측했던 경우의 수는 0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0이다. 나는 즉석에서 해결 방안도 제시햇다. 잘못된 예측 결과를 내놓는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보낼 수는 없으며, 예측을 중단할 수도 없다. (…) “내가 원하는 것은 카토의 예측을 포함한 모든 예측이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독특한 속성을 갖고 있다. 바로 ‘강건함’이다.”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강건한 것이나 안티프래질한 것이 프래질한 것만큼이나 세상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이 두가지에는 예측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여분이 있으면 왜 예측이 필요하지 않거나 덜 필요한지, 2장에서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자. (…) 빚에 시달리는 사람과 달리 당신에게 여분이 많다면 미래를 더 많이 예측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프래질한 것은 더욱 정확한 예측을 요구한다.

안티프래질은 시간이라는 현대의 스트레스 요인 속에서도 대상이 계속 전진하도록 해주는 힘이다.

토니의 모델은 지극히 간단하다. 먼저 프래질한 대상을 확인한다. 프래질한 대상의 붕괴에 내기를 걸고, (…) 붕괴 이후에 큰돈을 번다.

세네카의 비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베네카를 직접 읽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토아 철학에 대한 세네카식 버전은 운명으로부터 안티프래질해지는 것이다.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꺾이지 않고 오히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제거하기보다 길들이는 쪽에 더 가깝다. (…) 내가 생각하기로 스토아 철학이 추천하는 현대적 현인은 두려움을 침착함으로, 고통을 정보로, 실패를 시작으로, 소망을 실천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일 것이다.
세네카는 작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인생을 잘 다스리고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완벽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로마의 스토아주의자가 하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분노와 정당한 행위를 구분하고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는 방법은, 벌을 주기 전에 최소한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다.

프래질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승승국면보다 하강국면에 더 많이 있으며, 바람직하지 않은 비대칭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

안티프래질은 잃는 걷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하강국면보다 상승국면에 더 많이 있으며, 바람직한 비대칭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찾을 수 있다. 이디시어 속담에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라. 최선의 경우는 스스로 알아서 잘 관리된다.’라는 말이 잇다. 이 말이 평범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선의 경우에 대비하고 최악의 경우는 스스로 알아서 잘 관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라. 작은 손실을 혐오하면서 엄청나게 큰 블랙 스완에는 관심이 없거나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작고 일어날 법한 손실에 대해서는 보험을 들어놓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커다란 손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 거꾸로 행동한다.

이제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과거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성공했던 사람들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환상을 목적론적 오류라고 부르자.
합리적인 산책가는 여행가와 달리 일정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네로의 여행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소에 동화될 수 있다. 때로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에 이끌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계획의 포로가 아니다. 여행가는 목적론적 오류에 빠져들 수 있다.계획의 완벽함을 가정하고 자신을 수정 불가능한 프로그램에 가두어버린다. 반면 산책가는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동의 과정으로부터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옵션이라고 한다. (…) 옵션이 당신을 안티프래질하게 해주고, 불확실성의 부정적인 측면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으로부터 혜택을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탈레스는 비대칭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가장 순수한 형태의 명쾌한 비대칭성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구매자가 권한은 갖지만 의무는 갖지 않는 옵션이었다. (…) 반면에 상대방은 의무를 가졌지만 권한은 갖지 않았다. 탈레스는 이런 권한에 대해 얼마 안 되는 가격을 지불했는데, 실현 가능한 엄청난 이익을 감안하면 얼마 안 되는 손실이었다. (…)
옵션은 안티프래질로 안내해준다.

옵션의 한 가지 특징은 평균적인 결과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하강국면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한 결과만 생각하면 된다.

당신이 옵션을 가지고 있으면 지능, 지식, 통찰력, 기술 등 뇌세포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움직임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의 선택이 항상 옳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을 때 자신에게 해롭지 않도록 하고, 바람직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에는 이를 인식할 줄 아는 지혜만 있으면 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평가할 필요가 없고, 결과가 나온 후 평가하면 된다는 점이다).

이제 손실은 작지만 커다란 이익을 주는 시행착오를 ‘팅커링’이라고 부르자. 볼록성은 이런 정의 비대칭성을 의미하는데, (…)

자연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진화와 연관된 시험 과정에서 옵션을 활용하여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합리성이다. 자연은 다른 무엇인가를 하기를 두려워하는 연구자와 달리 옵션, 즉 비대칭성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연은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경로 의존성에서 설명했듯이, 생물학적 시스템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합리성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을 거부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런 무작위성은 발견과 실행이라는 두 단계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의 역할은, 비록 발견의 과정에서 우연의 역할이 과소평가되기는 하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두 번재 단계에서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나는 평생이 걸렸다. 실행은 반드시 발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실행은 행운과 우연을 요구한다. 의약품의 역사를 보면, 치료제의 발견이 이상한 순서로 흐트러져 있으며 이런 발견이 있고 나서 한참 뒤에야 실행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실행과 발견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실행은 발견보다 훨씬 더 어렵다.

절반은 발견되었다. 우리가 절반은 발견되었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는데, 이처럼 절반이 발견된 것을 발견된 것으로 가져가는 작업이 많은 경우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우리느 탈레스와 바퀴 이야기를 통해, 시행착오의 비대칭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안티프래질이 지능을 대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지능은 필요하다. 합리성에 관한 설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옵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여행용 가방에 바퀴를 다는 것과 같은 신기술로의 전환이 새로운 부작용이 전혀 없는데도 과거의 기술에 얽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버릴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무능함을 낳고 죄가 된다(반복해서 말해왔듯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버리더라도 오랫동안 지속될 만한 부작용은 없다. 즉 의원성 질환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행착오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옵션의 특징 때문에 시행착오는 실제로 무작위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결과를 인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판단할 줄알아야 한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 (…) 새로운 정보는 이전의 정보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갖는다. 매번 시도할수록 찾으려는 무엇인가에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것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실패했던 시도를 통해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점진적으로 알아간다.

어설픈 합리주의가 갖는 오류는 인간사에서 두 번째 유형의 지식, 즉 학문적 지식의 역할과 필요성을 과대펴가하도록 만들고 체계화할 수 없는 것, 더욱 복잡한 것, 직관적인 것,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이처럼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너무나 미미해 아무런 흥미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진술에 대한 반증은 없다.

이론과 실행의 중요한 차이는 사건의 순서를 정확하게 탐지하고 그 순서를 기억하는 데 있다. (…) 오늘 누군가가 살아보지도 않았던 사건을 바라본다면, 주로 사건의 순서에서 나타나는 혼란 때문에 인과관계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바이어스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역사학과 학생만큼의 비동시성을 갖지는 않는다. 역사는 거짓말과 바이어스로 가득 찬 고약한 것이다.

좋은 것만 골라서 취하는 체리 피킹은 옵션의 특정을 갖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나 그 이야기를 가지고 책을 쓰는 사람은 확증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나머지 사례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다. 무작위성과 분산의 정도가 클수록 이야기는 가장 낙관적이거나 가장 비관적으로 흘러간다. 옵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목적에 잘 맞는 이야기만 보고한다.

무엇인가(여기서는 인식, 아이디어, 이론)가 있고, 이런 무엇인가의 작용(여기서는 가격, 현실, 현실적인 것)이 있다. 이때 통합의 문제는 이런 무엇인가의 작용은 다른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다.

무엇인가와 무엇인가의 작용 간의 비대칭성이 커질수록 둘 사이의 차이도 더욱 커진다. 결국 이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옵션의 힘을 커다란 이익과 약간의 손실이라는 비대칭성에서 비롯되는 장점을 지니고서, 무엇인가를 편의주의적으로 행하는 선택적인 행동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옵션은 불확실성을 길들이고, 미래를 이해하지 않고서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면, 화술에 의존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 반대다. 안타깝게도 불확실성에 의해 길들여지고 좌절하게 만든다. 단순히 과거에 비추어 미래를 바라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화술에 근거한 지식 안티프래질, 옵션에서 나오는 팅커링, 시행착오
불확실성을 싫어한다(변화에 프래질하거나 칠면조처럼 과거에 바탕을 두고 현재를 잘못 인식한다). 불확실성을 길들인다(미지의 세계에 안티프래질하다).
과거를 바라본다.
지나치게 과거에 맞추려고 한다.
미래를 바라본다.
에피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목적론적 행위 편의주의적 행위
여행가 스타일 산책가 스타일
프래질, 어설픈 합리주의 강건한 합리주의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심리적으로 불편하지만 흥분과 도전을 추구한다.
오목성을 갖는다(알려진 이익, 알려지지 않은 손실) 볼록성을 갖는다(알려진 작은 손실, 엄청난 이익)
칠면조 문제에 빠져든다(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로 오인한다). 속아 넘어가는 사람, 칠면조 문제로부터 이익을 취한다.
부수 현상과 생목의 오류에 빠져든다. 생목의 오류에서 빠져나온다.
실험 과학가 물리학을 제외한 학계만의 매커니즘 실행의 주요 매커니즘
화술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에 바탕을 둔다. 화술은 도구다.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야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화술은 동기 부여에 불과하다.
좁은 범위, 폐쇄적인 행동 공간 넓은 범위, 열린 행동 공간.
대상이 갖는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이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더 나은 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두 가지 결과를 비교할 때 합리성을 유지해야 한다.
철학자의 돌(19장에서 설명하는 볼록성 바이어스)로부터 혜택을 얻지 못한다. 철학자의 돌에 의존한다.

행동가는 글을 쓰지 않는다. 행동할 뿐이다. 새들은 날아가고, 새들에게 날아가는 법을 가르쳤던 사람들이 새들의 이야기를 쓴다. 따라서 역사는 시간이 있고 학자로서 보호받는 자리에 있는 패자들이 기록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크랜턴 교수는 우리가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시행착오를 거치는 실험적 방법을 통해 제트 엔진을 만든다고 했다. 제조자는 엔진을 작동사키기 위해서 어떻게 부훔을 돌려서 조립해야 하는지 아는 원래의 엔지니어들을 필요로 한다. 이론은 뒤뚱거리면서 나중에 나온다. 숫자만 따지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기술에 관한 표준적인 역사에서 하는 이야기와 다르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는 내 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예의 바른 스크랜턴 교수는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분석적이고 인위적인 혁신 과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럽고도 혼란스러운 혁신 과정에 주목하고 있었다. 전자가 표준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산업혁명은 ‘기술을 직접 만드는 기술자’ 혹은 킬리가 말하는 ‘과학 애호가’에게서 나왔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을 구현했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헤론이 그 청사진을 훨씬 전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론의 이론은 거의 2000년 동안 어느 누군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따라서 실행과 재발견이 헤론의 청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혁신은 표류하는 성격이 있으며, 정해 놓은 절차에 갇히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산책가의 기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샤핀은 벤처 투자에서 중요한 결정은 비즈니스 플랜없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따라서 분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대체하거나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안티프래질한 경우(정의 블랙 스완 영역에서 팅커링처럼 정의 비대칭성을 갖는 경우), 표분은 장기 평균을 과소 추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점이 아닌 장점을 숨기게 된다.

보기 드문 사건은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에 과거의 표본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처럼 보기 드문 사건은 대부분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실제보다 훨씬 더 나은 장밋빛 환상을 갖게 된다.

정의 비대칭성 즉 안티프래질한 경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바람직한 상황이다. 따라서 ‘경험적 증거’는 바람직한 상황을 놓쳐서 전체 이익을 과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프래질한 경우(칠면조 문제처럼 부의 비대칭성을 갖는 경우), 표본은 장기 평균을 과소 추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과시하게 된다.

그 결과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반적인 방법은 이런 비대칭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첫째, 옵션의 특징을 찾아라. 그리고 옵션의 특징에 따라 대상의 순서를 매겨라. 둘째, 상항이 없는 보상을 선호하라. 셋째, 사업계획을 보고 투자 하지 말고 사람을 보고 투자하라. 그래서 직업을 예닐곱 번 혹은 그 이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이는 벤처 기업가 마크 안드레센이 정한 투자 방법이다. 사람을 보고 투자하면 사업계획이 보여주는 뛰어난 화술에 면역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건해질 수 있다. 넷째, 어떤 사업전략을 펼치든 그것이 바벨 전략인지 확인하라.

우리 삶에 내재된 가변성과 무작위성의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쥐어짜내는 것이 근대의 임무처럼 보인다.

독학을 추구하는 자들만이 자유롭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상품화를 추구하지 않고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제거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틀에 박힌 생활에 무작위성을 부여해보라(어쩌면 소외강믈 느낄 수도 있다).

이제 지난 1주일 동안 내렸던 모든 결정을 종이에 적는다면, 혹은 평생 동안 내렸던 결정을 모두 적을 수 있다면, 이런 결정의 대부분이 비대칭적인 보상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즉 한쪽의 보상이 다른 쪽보다 더 크다. 우리는 주로 확률이 아니라 프래질을 생각하면서 결정한다. 혹은 달리 표현하면, 주로 참과 거짓이 아니라 프래질을 생각하면서 결정한다.

그래프로 나타내자면, 세로축에는 손상을 표시하고 가로 축에는 돌의 크기를 표시하면 된다. 그러면 직선이 아닌 곡선 모양을 할 것이다. 이 그래프는 비대칭성을 자세히 보여준다.

프래질한 대상의 경우, 충격의 강도가 (일정 정도까지) 증가하면서 손상은 더 많이 증가한다.

이는 작은 충격이 큰 충격에 비해 균형에 맞지 않게, 즉 비선형적으로 영향을 덜 미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프래질한 대상의 경우, 작은 충격의 누적 효과는 이에 상응하는 단 한번의 큰 충격이 지닌 효과보다 더 작다.

이는 프래질한 대상이 중간 정도의 일련의 사건보다 극단적인 사건에 의해 훨씬 더 큰 손상을 받는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결국 이 원칙은 프래질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해준다.

안티프래질한 대상의 경우, 충격의 강도가 (일정 정도까지) 증가하면서 더 많은 혜택(혹은 손상의 감소)을 얻는다.

사람들이 한 가지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리고 비용과는 무관하게 그 방법을 당장 실행해야 할 때가 바로 ‘짜내기’를 해야하는 순간이다.

짜내기는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규모가 큰 것은 실수, 특히 터무니없는 짜내기에 취약하다. 규모가 커지면서 짜내기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은 비선형성을 띈다.

‘계획 오류’를 제기했던 심리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런 오류가 본질적으로는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즉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오류가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이런 오류는 본질적으로 프로젝트가 갖는 비선형성에 있다. 시간이 마이너스 값을 가질 수 없듯이, 3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제로 시간 혹은 마이너스 시간에 끝낼 수는 없다.

나는 프래질은 비선형성과 부의 볼록성 효과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며, 이런 볼록성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도 기뻤다. 또한 손상의 증폭을 탐지하는 방법은 불확실성하에서의 의사결정, 리스크 관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방법이 의학과 기술에 가장 흥미롭게 적용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수요는 경제학에서 나타난다.

내가 ‘(안티)프래질 탐지 발견법’이라고 이름 붙인 간단한 방법으로 다음 순서에 따라 적용하면 된다. 도시의 교통이 지나치게 최적화되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다고 하자. 그러나 그 다음에 자동차가 1만 대 더 늘어났을 때 교통 시간이 30분 더 늘어났다고 하자. 이처럼 교통 시간의 증가 속도가 크게 증가하면 교통은 프래질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증가 속도가 둔화될 때까지 교통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증가 속도는 극심한 오목성 혹은 부의 볼록성 효과를 갖는다).

나는 후쿠시마 원선 사고와 같은 사건을 계산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면서, 작은 확률에 대한 그들의 계산이 얼마나 프래질한지 깨달았다. 실제로 가정의 작은 변화가 확률을 엄청나게 끌어올리기 때문에 작은 확률은 오차에 상당히 프래질하다.

자동차의 수는 변화하는 성질을 지닌 숫자, 즉 변수 X다. 교통 시간은 이런 X의 함수다. X함수의 움직임은 변수 X의 움직임과 서로 같은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비선형성을 띠는 상황에서 X함수의 움직임은 변수 X의 움직임과 서로 같은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볼록함수(안티프래질)은 X의 함수값의 평균이 X의 평균의 함수 값보다 더 크다. 그리고 오목함수(프래질)는 그 반대이다.

여기서 두 가지 종류의 바이어스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기본적인 볼록성 효과로서 평균의 특성과 볼록함수의 특성을 오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이야기와 더욱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함수값의 평균의 평균을 평균의 함수값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후자가 바로 옵션의 특징을 나타낸다.

선형 보상을 받는 사람은 50% 이상으로 정확하게 맞추어야 한다. 볼록성을 띠는 보상을 받는 사람은 훨씬 덜 정확하게 맞추어도 된다. 안티프래질의 숨은 혜택은 당신이 무작위적일 때보다 덜 정확하게 맞추어도 여전히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준다는 데 있다. 여기에 바로 옵션의 힘이 작용한다. 당신의 함수는 상당히 볼록하다. 그래서 잘못을 하더라도 여전히 괜찮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낫다.

따라서 내가 지지하는 인식론의 중심 기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옳은 것이 아니라 틀린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이를 프래질과 강건함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부정적 지식(틀린 것, 유효하게 작용하지 않은 것)은 긍정적 지식(옳은 것,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에 비해 오류에 더욱 강건하다. 따라서 지식은 추가가 아니라 제거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지만, 우리가 틀린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옳을 수 없거나 최소한 쉽게 옳을 수 없다면 말이다.

내가 검은 백조를 보았다면,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는 진술이 틀렸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검은 백조를 본 적이 없더라도, 이런 진술이 롷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한 번의 작은 관찰은 어떤 진술의 오류를 입증할 수 있는 반면, 수백만 번의 관찰은 그 진술을 확증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오류 입증이 확증보다 더 엄격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실패(오류 입증)는 성공(확증)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부정적 지식이 더 강건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점을 두고 하는 일에 ‘예스’라고 대답하는 것을 집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집중의 의미가 아니다. 100개가 되는 다른 좋은 생각에 ‘노’라고 대답하는 것이 진정한 집중이다. 당신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 했던 것만큼이나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1000개의 생각에 ‘노’라고 대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혁신이다.”

먼저 극단의 왕국에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아주 드문 사건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리스크에 노출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지만,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처럼 아주 드문 사건을 활용하거나 예방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블랙 스완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라. 그럼 다른 한편으로 인생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마피아 조직원들이 말하듯이, 골치아픈 존재를 제거하는 데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부동산처럼 경험법칙에 따라 몇 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찾아 문제와 해결방안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바로 위치다. 나머지 사항들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이처럼 가장 중요한 특징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럼 나머지 사항들은 저절로 해결된다.

나는 의사결정을 할 때 컴퓨터 화면에 찬성과 반대의 이유를 각각 늘어놓는 대신 단순한 것이 더 낫다는 원칙을 직관적으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한가지를 넘을 때는, 그렇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가지 이유가 두 가지 이유보다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확신을 갖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분명한 결정(즉 실수에 강건한 결정)에는 한 가지 이유만이 필요하다.

인간은 기술적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공통점보다 차이를 먼저 본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금방 싫증을 내면서 별로 차이가 없는 최신 버전을 계속 찾는다. 이처럼 더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순간 참신함을 잃어버리는 새 것을 사게 만드는 자극을 ‘트레드밀 효과’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이런 효과는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 인간이 변화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바이어스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는 어떤 제품에 대해 차이를 인식하면서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 사람들은 새 것을 가지면 기분이 상승되면서 만족감을 얻다가 금방 처음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기술의 변화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지면 더욱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그러나 고전 작품이나 클래식 가구처럼 기술과 부관한 영역에서는 기술에 불만을 갖게 만드는 트레드밀 효과를 찾아볼 수 없다.

전자 책 단말기와 종이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핵심은 주로 공통점에 있다. 전자 책 단말기 판매업자는 이처럼 멋진 장치가 종이 책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 책 단말기의 버전을 비교할 때 그는 변함없이 미세한 차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바논 사람과 시리아 사람이 만나면 레반트 지역의 방언에서 나타나는 작은 차이에 집중한다. 그러나 레바논 사람이 만날 때에는 공통점에 집중한다.

하양식 효과는 돌이킬 수가 없으므로,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오래간다. 반면에 상향식 효과는 점진적으로 증가해 비록 경사가 기울어져 있기는 하지만 가는 길에서 창조와 파괴를 동반한다.

이제 고전기 이후의 회의주의적 경험주의자들의 생각을 소개하겠다. 우리는 이론에 잘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론은 잠깐 왔다가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남는다. 결정적인 이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각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설명은 항상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이는 원인을 보지 못해서 나타나는 인과관계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결국 경험만 남게 된다.

어떤 사람이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에게 자신의 의견에 돈을 투자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에 돈을 투자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면, 자신도 손해를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은 자신이 공허한 정장 차림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집단의 이익이라는 막연한 소리를 할 때는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아 네가티바의 원칙이다.

생명체는 가변성으로부터 이익을 본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가변성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음식은 맛이 없다. 노력이 없는 성과는 의미가 없다. 슬픔이 없는 기쁨도 의미가 없다. 불확실성이 없는 확인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리스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덕적인 삶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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