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30, 17:02

말소 - http://www.sushibar.cc/chloe/view/819
호텔에서의 짧은 밤을 보내고 난 뒤 아침 일찍 회장에 갔던 날이었다. 다른 때보다 바쁜 일정에 조금의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나온 것이었는데, 그 떨떠름함을 이유로 점심시간 이후 오후 일정에서 약간 짬을 내어 방에 되돌아간 터였다.
맨 끝에서 두번째 방, 가는 길 복도 한 방, 한 방 모두 입을 열어 단장하는 중이다. 나만한 아들을 두고 있을 법한 청소부가 나를 보자 고개를 숙인다. 나의 방 역시 잠시 청소부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나와 마주친 청소는 뭔가 잘못한 듯 고개를 떨구며 인사를 한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올까요하는 물음에 ‘괜찮습니다.’라고 간단히 답한 뒤, 방에 들어섰다.
이럴수가. 방은 아주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미처 휴지통에 담지 못한 것들은 마치 없었던 듯, 정리하지 못한 나의 물건들은 마치 이 방의 일부인 것 듯. 주름 하나 없는 침대를 무기로 방은 모든 흔적을 없애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것은 내 방이 아니다. 전혀 새로운 방이다. 나의 흔적, 문화, 역사가 사라진 새로운 방이다. 오후가 되고 늘 새로운 손님을 맞게 되는 새로운 방이다. 말끔한 침대 시트에 다시 주름을 내며 현대의 어떠한 상실을 느낀다. 차가운 도시가 따스함을 잃은 이유가 그것일지 모른다.
2009/11/03, 06:35
[footnote]사진 주인을 몰라 염치 불구하고 그냥 가져옵니다.[/footnote]
그동안 허황되고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예술일진데, 요즘 그것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조각상이나 그림이 아닐지라도 진정 예술이란 것은 이렇게 쉬우면서도 보는이가 즐거운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것이 사람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은 아니다.)
2009/10/14, 15:08
군을 마치고 나온 뒤에, 이 땅의 대부분이 남자들이 그렇듯 인간관계에 있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나마 협소한 연결점들이 모두 한번씩 필터에 걸러지면서 걸러진 이유를 알든 알지 못하든간에, 몇몇 알맹이만 남고 걸러진 나머지는 버려지고 말았다. 온라인의 그대들에게 약간의 기대심리가 있었던 나이지만, 그 조차도 이제는 방향타를 돌려버린 나머지 친하지 않거나, 뜸하면서도 미묘하게 오래가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들, 어중간한 사람들 또한 걸러지고 말았다. 걸러진 나머지도 생각보다는 그대들에게 내가 대단한 존재는 아닌 듯 하여 그리 크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또 한때는 나의 행각으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멀어지는 상대도 발생했었다.
상대방에 따라 여러가지 유형의 만남의 유지가 존재할텐데, 정말 온라인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초창기에 알게되었가 같은 동네란 이유로 실제로 계속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 H가 있었다. 몇년 후에 멀리 대구로 이사를 가버린 덕분에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그도 나도 부대끼는 성격은 아닌지라 일년에 한두번 이야기가 가능하면 다행으로 생각하던 것이 몇년. 다시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고3과 연속되는 재수 소식, 그리고 나의 군 입대가 곱해지자 가늘고 가늘어 손가락으로 집지도 못할만큼 가늘어져버린 관계에 대해 무감각해지려는 찰나. 제대하고 난 뒤에도 1년 넘게 통화하지 못했던 전화기의 H의 이름이 떳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은 눌렀을 때, 모든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으며 마치 사슬처럼 다시금 단단해진 믿음.
수년간 못했던 것들을 한번에 토해내듯 그것은 마치 속사포와 같이 서로를 향해, 아니 정확해는 H를 향해 발사되었지만 불행한 인간은 한가지 일만 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뇌로 직접 의사소통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수많은 이야기를 동시에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토해내는 것에 비해 H가 내놓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단 느낌이 든다. 그때도 이랬다. 이것조차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잊었던 좌절스런 현실에 약간의 씁쓸함을 느끼지만, 문득 씁쓸함이 오래전만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것과는 약간 다른, 이렇게 된 상황의 씁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