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일기

시간의 향기 (20140103, 마지막)

시간의 향기,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pp. 160

바로 오늘의 사회야말로 완전히 노동의 주체가 되어버린 인간이 저 자유로운 시간, 노동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점점 증가하는 생산성은 점점 더 많은 여가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여가 시간은 더 고차적 활동을 위해서도 쓰이지 않고, 한가로움을 위해서도 쓰이지 않는다. 그 시간은 일에서의 회복이나 소비에 사용될 뿐이다. 일하는 동물은 쉬는 시간만 알 뿐, 사색적 안식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pp. 166

"활동적인 사람들에게는 보통 고차적인 활동이 없다. 개인적 활동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관리로서, 상인으로서, 학자로서, 즉 일정한 부류에 속한 존재로서 활동할 뿐, 결코 개별적이고 유일한 특정 인간으로서 활동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돌 구르듯이 구른다. 어리석은 기계의 원리에 따라서."

pp. 173

진정한 의미의 사유는 임의로 가속화시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사유는 계산이나 단순한 이성의 활동과 구별된다. (...) 계산의 차원을 넘어서는 사유에는 특별한 시간성과 공간성이 내재한다. 그러한 사유는 단선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유가 자유로운 것은 사유의 장소와 시간이 계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유의 흐름은 불연속적일 때가 많다. 반면 계산은 단선적 궤도 위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소 계산은 그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고, 속도도 임의로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계산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우회나 일보후퇴는 무의미하다. 그런 것은 그저 단순한 일에 지나지 않는 계산 작업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오늘날은 사유조차 노동과 유사해진다.

pp. 181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화롱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마무리에 약간 힘이 달리는 느낌인데, 그것은 니체나 아렌트,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들을 넘나들며 인용하고 평하는 식으로 글을 써놓아 그런 것 같다.

행동적 삶과 사색적 삶으로 구분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달리 명확한 방법보다는 현 시대를 설명하며 사색적 삶과 한가로움을 되살려야 한단다. 정답은 따로 제공되지 않았고, 머리는 구처직 예시를 원하는데 그것조차 과정보다는 정답이라는 목표를 향한 노동이고 행동적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몸의 관성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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