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일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20150801)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

처음에는 약간 딱딱한 느낌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술술 풀리는, 쉽게 읽혀지는 문체의 글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칼럼으로 내었던 글을 편집한 것이라고 후에 밝히고 있다. 글쓴이의 독서량이 상당한 것 같은데 조금부정확한 부분이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 맹신하지 않고 적당히 가려서 읽으면 될 것 같다.

대단한 부제가 달려있지만 편하게 읽으면 되는 책이다.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휴먼 스케일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성공적이지만 걷고 싶지 않은 거리들은 대부분 휴먼 스케일 수준에서의 체험이 다양하게 제공되지 못한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거리는 대부분 압도적인 스케일로서 상징성을 가지는 거리이다.

과연 보행속도에 맞추어서 체험하는 변화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수준인가를 정량화해 볼 필요가 있다. 휴먼 스케일의 체험이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가로수의 크기, 인도의 폭, 평행해서 가는 차도의 폭, 거리에 늘어선 점포의 종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보행자가 걸으면서 마주치는 거리 위의 출구 빈도수와 걷고 싶은 거리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걷고 싶은 거리의 물리적 조건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보행자가 걸을 때 미국 도시에 비해서 유럽 도시가 더 자주 교차로와 마주치게 되고, 그 만큼 보행자는 더 다양한 선택의 경험 혹은 진행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난 도로의 공간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교차로가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선태의 경우의 수가 많이 생겨날 수록 그 도시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위거리당 출입구의 수는 거리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단위거리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경우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라고 표현해보자.

홍대 앞 거리에는 다양한 선택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보행자는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선택을 통해 다른 체험이 가능해진다.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 가를 정량적으로 보여 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앞선 조사 결과를 보면 거리의 속도가 사람의 걷는 속도인 시속 4킬로미터와 비슷한 값을 가질수록 사람들이 더 걷고 싶어 하는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시속 4킬로미터보다 느린 값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빠른 속도의 공간만큼이나 걷고 싶지 않을 것이다. (…) 그런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너무 노출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노출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을 말하고 그런 환경은 경험자가 부담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현재에 들어선 이후 크레인과 철골 구조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쉽게 휴먼 스케일을 넘어선 대형화로 진행 가능해졌다. 지나치게 커져 버린 건축물들 사이에서 인간은 소외되기 시작했고, 빠른 자동차가 이동하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옆으로 비켜나게 되고 더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 건물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거리로 나와서 다니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없어지는 도시 공간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형태는 다양하고 재료가 통일되었을 때 도시 공간이 다이내믹하고 좋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는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유서 깊은 오래된 건물이 있는 거리로 유명하다. 보스턴 시는 이 뉴베리 거리에 신축되거나 리모델링되는 건축물의 재료를 모두 붉은 벽돌을 사용하게 규제함으로써 재료의 통일감을 보존하여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옛 도시에는 마당에 나무가 있었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서나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옛 도시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연과 항상 소통하면서 세대 간의 교류를 촉진했던 골목길없이 복도와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세대는 과거에 비해 더 분리되고 소외될 뿐이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디자인에서 자연은 일상에서 체험되기보다는 보기만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계획안은 실패하엿다. 자연을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이해했을 때 건축 디자인은 실패한다.

우리의 아파트가 삭막하긴 하지만, 그나마 발코니가 사적인 외부 공간으로서 약간의 개인 마당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발코니마저 창틀을 통해서 내부 공간화시키고, 발코니 확장으로 방을 만들어 버리면서 우리의 도시 풍경은 사람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 삭막한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된 것이다.

이후 19세기에 파리를 재개발할 때에 시민을 통제하기 쉬운 공간 구조로 재구성하게 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파리를 방사형의 도로망으로 만들어서 모든 길들이 주요 간선도로로 연결되고 그 도로는 다시 개선문 광장을 향해서 방사형으로 모이게 되어있다. 만약에 시민이 봉기를 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간선도로로 모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개선문 위에 대포 몇 개만 설치해 놓아도 간단하게 모든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도시 디자인 덕분에 아주 적은 수의 군대로 큰 무리의 사람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졋다. 방사형 도시 구조는 방사상의 중심점에 서 있느냐, 반대로 주변부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권력을 차등적으로 갖게 된다.

격자형 도시 구조는 방사형 도시 구조에 비해서 평등한 민주적인 공간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격자형은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방사형 도시 구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체험하는 사람이 어느 한곳에만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이곳저것을 이동하면서 형태가 다양한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좋아서일 것이다. (…) 뉴욕 같은 경우에는 이 같은 격자형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브로드웨이가 디자인되어 있다.

뉴욕은 엄밀히 말하면 단순한 격자형은 아니다. 격자형이되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형태의 격자형이다. 가로로 형성된 길은 스트리트이고 세로로 난 길은 에버뉴로 명명되어있다. 만약이 이 블록의 형태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었다면 상당히 심심한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든지 모두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니까. 하지만 뉴옥은 에버뉴를 따라서 걸을 때와 스트리트를 따라서 걸을 때의 느낌이 크게 다르다.

프라이버시는 다른 말로 일정 공간의 완전한 소유를 뜻한다. 우리는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사생활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 큰 돈을 들여서 큰 집을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시간당으로 작은 공간을 렌트한다.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 방 같은 곳이다. 좀 더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산다. 자동차는 차의 내부가 방음이 되는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다.

간판 경관에 대한 판단은 경험하는 사람이 그 간판을 정보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장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인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은 정보로 인식되어 정보가 과부하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홍콩에 가서 한자로 쓰인 간판을 볼 경우엔 그것들은 모르는 글자이기 때문에 정보가 아닌 아르누보 장식과 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기 쉽고 공포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면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이 경계만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말처럼, 기억할 감정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벤트가 많이 일어나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성공적인 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뜨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이벤트들이 필요하다. (…) 건축가는 이런 이벤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무대장치를 디자인하는 연출가이다.

일본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제한된 3차원 공간 안에 보행자 동선을 복잡하게 집어넣어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10평이라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면 좁아 보인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한눈에 안 들어오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다른 시점에서 체험하고 바라보게 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면 더 넓게 느껴진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임기응변에 강한 국가이다. 서까래만 보아도 일본은 정확하게 다듬어진 것만 사용하지만 우리는 나무 모양 그대로 휘어진 상태로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신사를 20년에 한 번씩 새로 짓고 예전 것은 없애는 형식을 취한다. (…) 일본은 이 같은 철저한 매뉴얼이 갖추어져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나무가 휜 것은 휜 대로 사용한다. 웃기는 것은 일본이 이 같은 자연스러움을 자신들이 하는 극도의 매뉴얼보다도 더 높은 경지로 본다는 것이다. (…) 막 만들어진 찻잔이 일본인들의 눈에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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