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현실 (20131026)
사진과 현실, 한정식 지음/눈빛
pp. 51
사진의 미완성을 유도해 내는 이 실물감은 사진의 '여유'를 주고, 현실의 이해와 재구성에 도움을 준다. 그뿐 아니라, 작가가 아닌 수요층의 독자적 해석과 의미 부여도 가능하게 해 준다. (중략) 오히려 사진의 의미 확장, 의미 보완, 쉽게 말해서 사진가가 부여한 의미에 덧붙는 의미, '제3의 의미'를 생산하기도 한다.
pp. 52
사진에는 어쩔 수 없이 외적 정보가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 외적 정보의 처리에 따라 사진의 질은 달라진다. 외적 정보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고(완전 차단은 오히려 사진의 '생기'를 없애 버릴 위험이 높고), 차단이 안 될 경우, 작가의 주제 전달에 장애가 되기 쉽다. 결국 장애가 되지 않도록 외적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작가에게는 있어야 한다. 통제를 벗어나는 정보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중략) 사진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현실의 잡다함을, 풍크툼을 살리면서, 아니 풍크툼을 배양해가면서(풍크툼이 없는 사진은 볼 맛이 없다.) 어떻게 스투디움을 부각시켜야 하는가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사진의 맛이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pp. 55
그렇다고 언어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언어는 사진의 보조수단이지 중심 수단일 수가 없다. 보다 바람직한 언어의 역할은, 사진과 같은 주제를 향하되 언어는 언어적 입장에서의 사진의 배경(시대적, 환경적)을 깔아 주는 데 그쳐야 할 것이다. 내포적 의미까지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언어가 너무 앞서서 사진의 주제, 의미를 설명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언어가 사진을 설명해서도 안 되며, 사진이 언어의 구체적 증거 역할에 그쳐서도 안 된다는 것이, 사진에 붙는 언어, 언어의 도움을 받는 사진의 입장임을 이해해야한다.
pp. 74
현실은 모든 에술 위에 선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도 현실을 능가할 순 없다. 예술이고, 철학이고, 학문이고를 넘어선 그 맨 위에 현실은 군림한다. 그리고 이 현실에 가장 가까운 매체가 사진예술이다.
이 현실에 인위적 조작을 가할 때 현실은 현실성을 잃는다. 사진에 행해지는 인위적 조작은 사진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진이 사진일 수는 없다. 순수한 현실을 순수하게 수용하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눈에 띄도록 하는 대비. 대상과 외적 정보의 호흡. 외적 정보의 실물감. 그것에서 오는 현실.
몇몇 대목에서 느껴지는 저자는 구성사진을 매우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느끼는 듯 하다.